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호박 실은 노란 트럭과 물 떨어지는 산 사이에서 보낸 반나절

마리나 가든스 드라이브에 있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나에게 늘 "시간 계산을 잘못하는 곳"이다. 두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하고 들어갔다가 네 시간을 쓴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이를 데리고 플라워 돔부터 들어갔는데, 밖은 습도 때문에 셔츠가 등에 붙는 날씨였고 유리문 하나 지나자마자 팔에 소름이 돋았다. 돔 안은 확실히 서…

마리나 가든스 드라이브 ·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마리나 가든스 드라이브에 있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나에게 늘 "시간 계산을 잘못하는 곳"이다. 두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하고 들어갔다가 네 시간을 쓴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이를 데리고 플라워 돔부터 들어갔는데, 밖은 습도 때문에 셔츠가 등에 붙는 날씨였고 유리문 하나 지나자마자 팔에 소름이 돋았다. 돔 안은 확실히 서늘하다. 반팔만 입고 오래 있으면 아이는 춥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아이는 클라우드 포레스트 후반부에 얇은 바람막이를 꺼내 입혔다.

플라워 돔 — 그 계절엔 호박이 전시장을 다 먹고 있었다

내가 갔을 때 플라워 필드는 가을 수확 테마였다. 들어서자마자 야자수 기둥 옆에 사람 키 두 배쯤 되는 주황색 호박 조형물이 벌어진 입을 내밀고 있었고, 뒤쪽 벽에는 마늘·토마토·가지 같은 채소 부조가 줄지어 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여기서 안 지나간다. 붙잡힌다.

플라워 돔 안 야자수 기둥 옆에 세워진 커다란 주황색 호박 조형물과 벽면의 채소 부조 장식
유리 지붕 아래 입 벌린 호박 조형물. 아이 손을 놓치기 딱 좋은 지점이다.

전시 구역은 나무 난간으로 한 바퀴 둘러져 있어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조다. 난간에 기대면 채소 부조 벽, 삼각 편백, 수박과 복숭아 무더기가 한 화면에 들어온다. 사진 찍기 좋은 자리라 사람이 몰리는데, 조금만 옆으로 비켜서면 금방 빈다.

나무 난간 앞에서 아이를 안고 선 사람, 뒤로 채소 부조 벽과 호박 조형물이 늘어선 플라워 돔 전시 구역
난간 한 바퀴가 그대로 전시 관람 동선이다. 옆에서는 아이를 난간에 올려놓고 보여주는 가족도 있었다.

난간 반대편으로 돌면 유리벽 너머로 바깥 바다와 건물들이 보인다. 야자수 줄기와 유리 격자, 그 뒤 수평선이 겹치는 구도가 이 돔에서 제일 싱가포르답다고 느낀 장면이었다. 냉방 덕에 여기 서서 한참 숨을 돌렸다.

플라워 돔 난간 앞에 앉은 어른과 아이, 뒤로 야자수와 유리벽 너머 바다 풍경
유리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자리. 돔 안이 시원해서 다들 여기서 쉬어간다.

노란 픽업트럭, 이 전시의 주인공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낡은 노란색 픽업트럭 한 대가 짐칸 가득 호박을 싣고 서 있다. 실물 크기다. 옆으로 흘러넘친 호박이 바닥까지 깔려 있고 그 사이를 노란 국화와 자주색 국화가 메운다. 호박 종류가 진짜 다양해서 한참 들여다봤다. 매끈한 주황 호박만 있는 게 아니라 겉이 오돌토돌한 것, 회청색인 것, 흰색인 것, 초록 줄무늬가 도는 것까지 섞여 있다.

짐칸에 호박과 노란 국화를 가득 실은 노란색 빈티지 픽업트럭과 바닥까지 쏟아진 각종 호박들
노란 트럭. 전시 구역 안쪽 계단 옆에 있어서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보인다.

트럭 바로 옆 낮은 계단이 앉기 좋다. 우리도 여기 앉아서 잠깐 쉬었는데, 앉은 눈높이에서 보면 호박이 얼굴 앞까지 밀려와 있어서 사진이 훨씬 재밌게 나온다. 뒤쪽 화단에는 칼라와 수선화 같은 꽃이 심겨 있어 배경도 심심하지 않다.

호박 더미 옆 낮은 계단에 앉은 어른과 아이, 뒤쪽 화단에는 칼라와 여러 색 꽃이 피어 있다
계단에 앉으면 호박이 눈높이로 온다. 사람 몰리기 전에 앉는 게 요령.

과일과 채소로 만든 거인

전시 한가운데에는 밀짚모자를 쓴 거대한 인물상이 앉아 있다. 얼굴은 사과와 옥수수, 수염은 대파와 배추, 목에는 감과 복숭아를 엮은 목걸이를 걸었고, 양팔에는 수박을 하나씩 끼고 바나나 송이를 들었다. 무릎 앞에는 커다란 호박이 놓여 있다. 아르침볼도 그림을 3차원으로 세워놓은 느낌인데,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훨씬 크다. 옆에서 보면 복숭아가 층층이 쌓인 게 다 보여서 정면보다 측면이 더 재밌었다.

옆에서 본 과일과 채소로 만든 거인 조형물, 복숭아와 포도가 층층이 쌓여 있고 왼쪽에는 호박을 쌓아 올린 벽
측면. 왼쪽 호박 벽은 진짜 호박을 층층이 쌓아 만든 것이다.
정면에서 본 밀짚모자 쓴 거인 조형물, 얼굴은 과일 수염은 채소로 만들었고 유리 지붕 너머로 마리나베이샌즈 건물이 보인다
정면에서. 오른쪽 유리 너머로 마리나베이샌즈 건물이 걸린다.

돔 밖 할로윈 코너 — 아이 반응이 갈린다

플라워 필드 홀 쪽으로 나오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잭오랜턴을 다섯 개 쌓아 올린 탑, 넝마를 걸친 허수아비, 눈알과 광대 얼굴을 그려 넣은 호박들이 우드칩 화단에 흩어져 있다. "Please Do Not Touch" 안내판이 붙어 있으니 아이 손 조심. 우리 아이는 신나서 뛰어다녔는데, 옆 유모차의 아이는 그 소란 속에서 아주 잘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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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를 쌓아 올린 잭오랜턴 탑과 넝마를 걸친 허수아비, 바닥에 흩어진 얼굴 그린 호박들과 유모차에서 잠든 아이
잭오랜턴 탑과 허수아비. 만지지 말라는 안내판이 앞에 있다.

조금 더 가면 뚜껑이 부서진 관에서 손이 튀어나오고, 그 앞에 "BILLY THE KID"이라 새긴 묘비와 삽, 까마귀가 놓인 포토존이 있다. 얼굴을 넣고 찍으라고 관 위쪽이 뚫려 있다. 무서워하는 아이면 이 구역은 빠르게 지나가는 게 낫다. 실제로 여기서 울음 터진 아이를 두어 명 봤다.

BILLY THE KID이라 새겨진 묘비와 손이 튀어나온 관, 그 위에 앉은 까마귀 조형물로 만든 할로윈 포토존
얼굴 넣고 찍는 관 포토존. 묘비에 BILLY THE KID이라 새겨져 있다.

위치와 동선 — 어디로 들어가느냐가 반나절을 좌우한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지도에서 보면 마리나 베이 동쪽, 마리나베이샌즈 바로 뒤에 붙어 있다. MRT 베이프론트역에서 지하 연결통로를 따라가면 되는데, 지상으로 나와 걷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낮 시간에 지상으로 걸으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땀범벅이 된다. 다만 역에서 두 돔 입구까지는 안내표지를 따라 꽤 걸어야 하니 유모차나 아이 동반이면 여유를 두는 게 좋다.

두 돔 관람은 클라우드 포레스트를 먼저 하고 플라워 돔을 나중에 하는 순서를 권하고 싶다. 클라우드 포레스트는 엘리베이터로 꼭대기까지 올라간 뒤 걸어 내려오는 구조라 체력을 더 쓴다. 입장권과 운영 시간은 시즌마다 바뀌니 현장 또는 공식 안내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클라우드 포레스트 — 물소리부터 온다

문을 열자마자 물 떨어지는 소리와 차가운 물안개가 얼굴에 닿는다. 35미터짜리 초록 산에서 폭포가 여러 갈래로 쏟아지는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산 표면에 심긴 고사리와 붉은 꽃들이 층층이 붙어 있는 게 보인다. 렌즈에 물방울이 튀니 카메라 쓰는 사람은 천 하나 챙기는 게 좋다.

클라우드 포레스트 실내 인공산에서 여러 갈래로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와 산 표면을 덮은 고사리, 붉은 꽃들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실내 폭포. 아래 서 있으면 물안개가 그대로 온다.

엘리베이터로 꼭대기에 올라가면 아래 광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리 지붕 너머로 바깥 도로와 차선까지 보이는데, 이 대비가 이 온실의 정체를 말해준다. 사람 크기가 점처럼 작아진다.

클라우드 포레스트 위층에서 내려다본 아래 광장과 고사리 숲, 오른쪽에는 떨어지는 폭포와 붉은 안스리움
위에서 내려다본 광장. 유리 너머로 바깥 도로가 그대로 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건 산 허리를 감고 도는 공중 통로다. 얇은 철제 다리가 허공에 떠 있고, 그 너머로 바다와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보인다. 아래가 훤히 보이는 격자 바닥 구간이 있어서 고소공포가 있으면 가운데 철판 부분으로 걸으면 된다. 사람이 많으면 다리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클라우드 포레스트 공중 통로를 걷는 관람객들과 왼쪽 초록 벽에 핀 붉은 꽃, 유리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배
산허리를 감아 도는 공중 통로. 유리 밖으로 항구와 배가 보인다.
주황색 바람막이를 입은 아이가 클라우드 포레스트 공중 통로 한가운데 서 있고 뒤로 다른 관람객들이 난간에 기대 있다
돔 안이 서늘해서 아이에게 바람막이를 입혔다. 여기서 꼭 필요했다.

통로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고사리 숲과 회색 산책로, 그 사이 웅덩이가 지도처럼 펼쳐진다. 왼쪽으로 뻗은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과 아래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이 한 장면에 같이 들어온다. 이 각도는 위층에서만 나온다.

클라우드 포레스트 꼭대기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본 공중 통로와 고사리 숲, 회색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
거의 수직으로 내려다본 장면. 사람이 점처럼 작다.

내려오는 길 중간, 통로 아래쪽에서 산을 올려다보면 통로가 초록 덩어리 위를 크게 휘어 감고 있는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벽면에는 브로멜리아드와 베고니아 같은 착생식물이 빼곡히 붙어 있는데, 사람 손으로 저걸 다 심었다는 게 매번 놀랍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클라우드 포레스트 인공산과 산을 크게 감아 도는 공중 통로, 벽면을 덮은 착생식물들
통로가 산을 감아 도는 구조. 벽면 식물은 전부 사람이 심어 붙인 것이다.
초록 식물 벽을 배경으로 주황색 바람막이를 입은 아이가 다리 위에 서 있고 주변에 다른 관람객들이 지나간다
초록 벽을 정면으로 두는 이 다리 중간이 인물 사진 배경으로 제일 낫다.

화장실 입구를 놓치지 마라

아래층으로 다 내려와 화장실을 찾다가 뜻밖의 것을 봤다. 나무뿌리를 통째로 조각한 듯한 벽에 커다란 짐승 얼굴이 새겨져 있고, 그 벌린 입이 통로 입구다. 화장실 표지판이 안쪽에 붙어 있어서 처음엔 들어가도 되나 싶었다. 아이가 여기서 제일 신나게 놀았다. 정작 전시가 아니라 화장실 가는 길에서.

나무뿌리를 조각해 만든 짐승 얼굴 모양 통로 입구와 그 앞에서 팔을 벌리고 선 아이, 안쪽에 화장실 표지판이 보인다
짐승 입 모양 통로. 안쪽에 화장실 표지가 붙어 있다.

다음에 가면 이렇게 하겠다

아쉬웠던 점도 있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공중 통로가 거의 줄 서서 걷는 수준이 되고, 사진 한 장 찍으려면 뒷사람 눈치를 봐야 한다. 조형물 앞 포토존도 대기가 길다. 오전 이른 시간이나 늦은 오후를 노리면 확실히 다르다. 두 번째 방문 때 늦은 오후에 들어갔더니 같은 통로가 훨씬 헐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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