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홍손 반락타이(Ban Rak Thai): 미얀마 국경 앞 호수 마을에서 이틀을 보냈다

빠이에서 출발해 1095번 도로를 타고 매홍손 시내를 지나, 다시 산길로 40분쯤 더 들어가면 갑자기 차밭이 열리고 그 아래에 호수가 나타난다. 태국 북부 매홍손 주, 미얀마 국경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마을 반락타이. 1949년 이후 중국 윈난성에서 국경을 넘어온 국민당(KMT) 93사단 군인들과 그 후손들…

매홍손

빠이에서 출발해 1095번 도로를 타고 매홍손 시내를 지나, 다시 산길로 40분쯤 더 들어가면 갑자기 차밭이 열리고 그 아래에 호수가 나타난다. 태국 북부 매홍손 주, 미얀마 국경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마을 반락타이. 1949년 이후 중국 윈난성에서 국경을 넘어온 국민당(KMT) 93사단 군인들과 그 후손들이 정착해 만든 화교 마을이고, 이름 자체가 '태국을 사랑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태국 안에 있지만 간판의 절반은 한자고, 식당에서 나오는 건 팟타이가 아니라 윈난식 돼지고기 조림이다. 나는 이런 어중간한 국경 마을을 좋아해서 동남아를 다니는 편인데, 반락타이는 그중에서도 정체성이 가장 선명한 축에 든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데 20분, 그런데 하루가 간다

마을의 중심은 호수다. 지도로 보면 손바닥만 하고 실제로도 천천히 걸어서 한 바퀴에 20~25분이면 충분한데, 문제는 그 20분이 절대 20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가를 따라 찻집이 줄줄이 붙어 있고, 그중 한 곳에라도 앉으면 두 시간이 사라진다. 도착한 첫날 오후는 하늘이 통째로 회색이었다. 산 능선 위로 구름이 담요처럼 걸려 있었고, 호수 표면에 잔물결만 계속 일었다. 사진으로 보면 우중충하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소리가 거의 없다는 게 먼저 온다. 새소리, 물 튀는 소리, 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 그게 전부다.

흐린 날 회색 구름이 산 능선에 걸린 반락타이 호수, 왼쪽 물가에 파란 지붕 수상 찻집들이 줄지어 있다
도착 첫날 오후. 구름이 산 위에 그대로 얹혀 있었다. 왼쪽으로 보이는 파란 지붕이 물가 찻집들.

다음 날 아침에는 구름이 조금 걷혀서 하늘에 파란 구멍이 생겼다. 같은 호수인데 물색이 완전히 달랐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찍은 사진 속 호수 한가운데 작게 떠 있는 건 물 위로 솟은 나뭇가지 같은 것인데, 아침 산책 나온 동네 개가 그쪽을 한참 노려보고 있었다. 반락타이에서 날씨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여기 오는 사람 대부분이 하루 이틀만 자고 가면서 "안개 낀 호수" 사진 한 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안개는 새벽 6시대에 잠깐 있다가 8시면 사라진다. 늦잠 자면 못 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다본 맑은 날의 반락타이 호수, 왼쪽 물가에 주황색과 흰색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이튿날 아침, 나무 아래에서 본 호수. 하루 만에 물색이 이렇게 달라진다.

호수 반대편, 그러니까 주차장 쪽에서 마을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마을 전체가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왼쪽 언덕의 빨간 지붕 건물부터 오른쪽 능선의 리조트 단지까지, 그리고 그 사이를 계단식 차밭이 채운다. 오른쪽 앞에 보이는 커다란 배 모양 구조물은 호숫가에 세워둔 조형물인데, 사진 찍는 자리로 인기가 많아서 낮에는 순서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본 반락타이 마을 전경, 왼쪽에 빨간 지붕 건물과 오른쪽 언덕의 목조 리조트, 오른쪽 앞에 배 모양 조형물이 보인다
호수 건너편에서 본 마을 전체. 오른쪽 앞의 배 모양 조형물이 사진 포인트다.

차밭 위에 얹힌 흙집들 — 이 마을의 진짜 얼굴

반락타이가 다른 태국 산골 마을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건축이다. 언덕 사면을 계단식으로 깎아 차나무를 심고, 그 사이사이에 황토색 벽에 회색 기와를 얹은 중국식 흙집을 박아 넣었다. 낮에 언덕 아래 주차장 쪽에서 올려다보면 집 한 채마다 차밭 이랑이 등고선처럼 두르고 있는 게 보인다. 앞쪽에 잔뜩 쌓여 있는 회색 물체는 담뱃잎처럼 말린 잎을 넓게 펼쳐 말리는 건조대인데, 가까이 가면 마른 풀 냄새가 훅 올라온다. 사진 왼쪽으로 삐죽 올라온 긴 대나무 장대들은 마을 곳곳에 꽂혀 있는 깃대다.

낮에 본 반락타이 언덕의 황토색 흙집 숙소들과 계단식 차밭, 앞쪽에는 회색 잎을 펼쳐 말리는 건조대와 주차된 차량들
차밭 사면에 계단처럼 앉은 흙집 숙소들. 앞쪽 회색 더미는 잎을 펼쳐 말리는 건조대다.

그런데 이 흙집들의 진가는 해가 지고 나서다. 저녁 7시쯤, 하늘이 아직 완전히 검어지지 않고 진한 남색으로 남아 있을 때 집집마다 주황색 등이 켜진다. 차밭 이랑 사이에 심어둔 조명까지 같이 들어와서, 언덕 전체가 점점이 빛나는 모양이 된다. 위쪽 하늘에 달이 하나 떠 있었고, 그 아래로 별이 몇 개 보였다. 카메라 없이 그냥 서서 보는 게 더 좋았다. 다만 정직하게 적자면 — 이 야경은 마을이 관광지로 다듬어지면서 만들어진 풍경이지, 국민당 후손들이 처음 정착했을 때의 모습은 아니다. 그걸 알고 봐도 예쁘긴 예쁘다.

짙은 남색 밤하늘 아래 주황색 조명이 켜진 반락타이 언덕의 흙집 숙소들과 차밭, 하늘에 달과 별이 보인다
같은 언덕, 저녁 7시. 달이 뜨고 흙집마다 등이 들어왔다.

호수 쪽에서 마을 중심가를 올려다보면 또 다른 층위가 보인다. 아래쪽은 회색 기와를 얹은 오래된 살림집과 상점들이고, 그 위 언덕에는 처마 끝이 날카롭게 올라간 노란 벽 건물들, 붉은 등롱이 줄줄이 걸린 담장, 그리고 성벽처럼 생긴 흰 구조물까지 올라앉아 있다. 신축 리조트와 옛 마을이 한 화면에 겹쳐 있는 게 지금의 반락타이다.

반락타이 마을 중심가에서 올려다본 언덕, 회색 기와집 위로 처마가 올라간 노란 벽 건물들과 붉은 등롱, 흰 성벽 모양 구조물이 보인다
아래는 옛 기와집, 위는 새로 지은 중국풍 숙소. 붉은 등롱이 담장을 따라 이어진다.

이 마을에서 사람이 실제로 사는 자리

관광객이 잘 안 걷는 방향이 있다. 호수 남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붉은 기와를 얹은 분홍색 살림집이 나오는데, 지붕에 주황색 위성 안테나가 달려 있고 처마 밑에는 보라색 빨래가 널려 있었다. 그 뒤 언덕으로는 하얀 돔 텐트 글램핑이 여러 동 들어서는 중이었고, 나무 데크를 새로 까는 공사도 한창이었다. 여기가 지금 반락타이의 진짜 상태다. 조용한 산골 마을이라는 이미지와, 성수기 수요를 받으려고 언덕을 계속 깎고 있는 현실이 나란히 있다. 첫날 밤 옆 언덕에서 콘크리트 치는 소리가 아침 8시부터 들렸다. 완전한 정적을 기대하고 오면 살짝 배신감이 들 수 있다.

붉은 기와와 주황색 위성 안테나가 달린 분홍색 살림집, 뒤쪽 언덕에는 하얀 돔 텐트 글램핑 숙소와 공사 중인 목재 데크가 보인다
골목 안쪽의 살림집. 뒤 언덕에는 돔 텐트 글램핑이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위치·가는 법·현실적인 조언

반락타이는 매홍손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산길 약 44km, 차로 1시간 10분~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거리는 짧은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오르막 헤어핀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스쿠터로 갔는데, 125cc로는 경사 구간에서 힘이 확실히 부족했다. 초행이고 자신 없으면 매홍손에서 썽태우나 차량을 대절하는 편이 낫다. 우기(대략 6~10월)에는 노면이 젖어 있고 안개까지 끼면 시야가 몇십 미터로 줄어든다. 해 지고 나서 이 길을 처음 달리는 건 권하지 않는다.

마을 초입에는 차밭을 배경으로 흙집들이 층층이 올라앉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 사진은 대나무 장대 너머로 담은 낮 풍경인데, 아래쪽 주차장에 차가 이 정도 들어차 있으면 성수기 낮 시간대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이 지역은 태국인들 사이에서 겨울 인기 여행지라 12~1월 주말에는 숙소가 몇 달 전에 마감된다.

해질 무렵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반락타이 호수와 마을 전경, 물가 상점들의 불빛이 호수에 길게 반사되고 작은 보트 한 척이 떠 있다
해질 무렵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 상점 불빛이 호수에 길게 늘어지고, 오른쪽에 작은 뗏목 보트가 떠 있다.

실제로 다녀와서 남는 조언 몇 가지.

떠나는 날 아침, 짐을 실어놓고 호수를 한 바퀴 더 걸었다. 찻집 주인 할머니가 문 앞 의자에 앉아 아직 영업 준비 전인 채로 차를 마시고 있었고, 나한테 태국어도 영어도 아닌 중국어로 뭐라고 한 마디 했다. 알아듣지는 못했는데 웃고 손을 흔들어줬다. 국경 옆 산속에 윈난이 통째로 옮겨와 앉아 있는 기분, 반락타이에서 남는 건 결국 그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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