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갈릴리농원, 말복에 부모님 모시고 20년째 가는 장어집
경기도 파주 외곽, 논밭과 창고형 건물 사이에 뜬금없이 커다란 목조 건물 하나가 서 있다. 간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처마에 길게 붙은 문구다. "자연을 키우며,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그 옆에 작게 '청정정예주의 갈릴리농원'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 가족이 20년 넘게 다니는 장어집이고, 이번 말복에도 결국 여기로…
파주 · 갈릴리농원
경기도 파주 외곽, 논밭과 창고형 건물 사이에 뜬금없이 커다란 목조 건물 하나가 서 있다. 간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처마에 길게 붙은 문구다. "자연을 키우며,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그 옆에 작게 '청정정예주의 갈릴리농원'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 가족이 20년 넘게 다니는 장어집이고, 이번 말복에도 결국 여기로 왔다. 부모님이 "올여름은 뭐 먹지" 하고 물으면 대답이 정해져 있는 집이다.

주차장에서 본 갈릴리농원 입구. 오른쪽으로 차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주말 저녁, 대기번호 687번
도착하자마자 하는 일은 밥 먹는 게 아니라 접수다. 입구 옆 별도 대기실에 태블릿 키오스크가 있고, 벽에는 "접수를 먼저 해주세요. 접수 순서대로 번호 불러드려요"라고 손글씨 느낌의 안내판이 붙어 있다. 우리가 뽑은 번호대는 680번대였고, 화면에는 683·684·685·686·687이 나란히 떠 있었다. 즉, 앞에 몇 팀이 아니라 몇십 팀이 있다는 뜻이다.
대기실 벽에는 이 집의 내력이 길게 적혀 있다. 갈릴리수산에서 직접 뱀장어를 양식해 판매하고, 초기에는 국내 도매와 일본 수출 위주였다가 1999년부터 장어 전문 음식점을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반대편 벽은 경기도 명품수산물 'G+FISH' 인증 설명으로, 2개월마다 유해물질 정밀검사(항생제·중금속 등 46개 항목)를 받고 기준 초과 시 인증이 즉시 취소된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기다리는 동안 읽으라고 붙여둔 것 같은데, 실제로 읽고 있으면 시간이 조금 빨리 간다.

대기실 모니터에 687번까지 떠 있다. 오른쪽 벽은 G+FISH 인증 안내.
대기실 한쪽에는 '갈릴리 농원 명품 장어 선물세트' 배너가 서 있다. 시그니처 선물세트(명품장어 9미 + 리브솔트 그라터 세트) 240,000원, 프리미엄 선물세트(명품장어 6미 + 갈리오스 메솔롱기 소금 세트) 180,000원. 전화주문 번호는 031-942-7766으로 적혀 있었다. 명절 선물용으로 300세트 한정이라는데, 우리 집은 사본 적은 없고 매번 "저건 누구 드리기 좋겠다" 하고 지나친다.

대기실에 세워둔 선물세트 안내 배너. 가격은 방문 시점 기준이니 현장 확인 권장.
식당 홀 — 학교 급식실 같은 규모
번호가 불려 들어가면 규모에 한 번 놀란다. 천장이 뻥 뚫린 창고형 구조에 검은 배기 후드가 줄줄이 매달려 있고, 후드마다 71·77·78·84·85 같은 번호표가 붙어 있다. 즉 테이블 번호가 후드 번호다. 긴 원목 테이블에 등받이 없는 벤치, 통유리 너머로 바깥 나무가 보이는 구조라 식당이라기보다 잘 지은 캠프 식당 같다. 자리를 안내받아 앉으면 옆 테이블과 팔꿈치가 닿을 만큼 붙어 있는 날도 있다. 조용히 먹고 싶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집이라는 건 미리 말해두고 싶다. 애들 뛰어다니고, 후드 돌아가는 소리 나고, 여기저기서 고기 뒤집는 집게 소리가 난다.

후드에 붙은 71·77·84 같은 숫자가 테이블 번호. 주말 저녁엔 빈자리가 거의 없다.
홀 가운데로는 직원들이 초록색 플라스틱 통을 실은 카트를 밀고 다니며 다 먹은 접시를 걷어 간다. 셀프바에서 상추를 담아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 아이 손잡고 화장실 다녀오는 사람이 통로에서 계속 엇갈린다. 이 동선이 꽤 넓게 잡혀 있는 편인데도 붐빌 땐 한참 기다렸다 지나가야 한다.

퇴식 카트가 수시로 지나가는 통로. 그만큼 회전이 빠르다.
셀프바 사용법 — "드실 만큼만"
이 집은 반찬을 상다리 부러지게 깔아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홀 가운데 셀프바가 서 있고, 벽에 이렇게 적혀 있다. "기본 차림상은 준비해 드립니다 / 드실 만큼 준비하세요 / 야채 포장은 불가능합니다 / 많은 분들이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 깨끗이 이용해주세요." 그릇도 여기 쌓여 있어서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쓰면 되고, 옆에 정수기도 붙어 있다. 처음 온 사람이 자리에 앉아 반찬 나오길 기다리다 어리둥절해하는 걸 몇 번 봤는데, 여긴 일어나서 직접 가져오는 집이다.

셀프바 옆 정수기와 그릇 선반. "야채 포장은 불가능합니다"가 굵게 적혀 있다.
셀프바 내용물은 단출하지만 장어에 필요한 건 다 있다. 생강채, 물에 담가 아린 맛을 뺀 양파 조각, 깻잎, 상추, 적상추, 쌈케일, 그리고 통째로 놓인 청양고추. 장어 기름을 잡아주는 건 결국 저 양파와 생강채라, 나는 첫 접시부터 양파를 넉넉히 담아 온다. 아쉬운 점 하나 적자면, 붐비는 시간엔 케일이나 깻잎 트레이가 잠깐씩 비는 때가 있다. 그럴 땐 조금 기다리면 직원이 새 트레이를 채워준다.

생강채·양파·깻잎·적상추·케일·청양고추. 장어에 필요한 건 여기 다 있다.
숯불 위 장어, 그리고 단골들의 소시지
주문한 장어가 나오면 직원이 숯을 넣어주고, 그 위에 석쇠를 올린다. 손질된 장어는 껍질 쪽이 거뭇하고 살은 분홍빛이 도는 두툼한 상태로 나온다. 굽는 건 손님 몫이다. 껍질을 아래로 놓고 굽다가 살이 하얗게 익어 오르면 뒤집는데, 장어는 자꾸 만지면 부서지니 참는 게 요령이다. 상 위에는 장어소스 종지, 생강채, 김치, 초장 그릇이 놓인다.

막 올린 장어. 오른쪽과 아래에 소시지가 같이 올라가 있다.
사진에 소시지가 같이 올라간 이유가 있다. 이 집은 밥이나 식사 메뉴를 따로 팔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 다닌 사람들은 집에서 햇반이나 소시지 같은 걸 챙겨 와서 같이 구워 먹는다. 우리 가족도 20년째 그렇게 한다. 장어만 계속 먹으면 세 점째부터 물리는데, 중간에 짭짤한 소시지 한 조각 씹으면 입이 리셋된다. 아이들 데려온 집이라면 특히 유용하다. 오늘도 옆 테이블에서 비슷한 걸 굽고 있었다.
장어가 익어가면 직원이 와서 가위로 한입 크기로 잘라준다. 잘린 단면이 도르르 말리면서 기름이 지글거리는데, 이때 소금만 살짝 찍어 먹는 게 첫 점으로 제일 좋다. 두 점째부터 장어소스를 바르고, 생강채를 얹는다. 담백하다기보다 확실히 기름지고 진한 맛이라, 청양고추 한 조각을 곁들이면 균형이 맞는다. 여름 끝물의 더운 저녁에 숯불 앞에 앉아 있으면 땀이 나는데, 그게 이 집에서 몸보신했다는 실감이기도 하다.

잘라 놓으면 이렇게 말린다. 오른쪽 소시지는 가져온 것.
위치·가는 법
파주 시내 중심이 아니라 외곽 도로변에 있어서, 사실상 차가 있어야 편하다. 건물 앞이 통째로 평면 주차장이라 주차 걱정은 거의 없는 편인데, 대신 주말 식사 시간대에는 안쪽까지 차가 들어차 조금 걸어야 할 수 있다. 입구 왼편에는 음료 자판기가 있고, 그 앞이 흡연·대기 공간처럼 쓰인다. 아래 지도의 위치가 이번에 다녀온 지점이다.
처음 가는 사람을 위한 정리
도착하면 먼저 접수. 자리부터 찾지 말고 대기실 키오스크에서 번호를 뽑는다. 주말 저녁엔 세 자리 번호가 예사다.
밥·식사류는 팔지 않는다. 햇반, 소시지 같은 건 집에서 챙겨 오면 훨씬 든든하다. 단골들의 방식이다.
채소·그릇은 셀프바에서. 다만 야채 포장은 안 된다고 명시돼 있으니 남기지 말고 먹을 만큼만.
붐비고 시끄럽다. 조용한 저녁 식사를 기대하고 가면 실망한다. 대신 가족 단위로 가면 눈치 볼 일이 없다.
가격·영업시간은 현장 확인 권장. 입구 유리문에 영업시간이 붙어 있고, 선물세트 가격은 위 배너 사진 기준이다.
한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삼겹살이나 치킨 말고 한국식 장어구이를 제대로 한 번 먹어보고 싶다면, 서울에서 차로 나와 파주 쪽으로 잡아볼 만한 집이다. 관광지형 식당이 아니라 주말마다 온 가족이 몰려와 숯불 앞에 앉는 동네 대형 장어집이라, 한국 사람들이 여름에 뭘 어떻게 먹는지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우리 집 기준으로는 20년 넘게 답이 바뀐 적이 없다.